충돌사고 이지스함 수병 증언 "누군가 한눈팔았다"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이 왜 1000개 이상의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선을 피하지 못했을까.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 제7함대 소속 피츠제럴드함(8300t급)이 필리핀 선적 ACX 크리스털호(2만9000t급)와 충돌한 사건의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4일 보도했다. 사고는 지난 17일 새벽 1시 30분쯤 일본 시즈오카현 이즈반도 남쪽 해상에서 발생했다. 피츠제럴드함이 크리스털호의 선수에 부딪혀 레이더 체계 바로 아래 우현이 크게 파손됐다. 사고 당시 함정엔 직경 4m에 달하는 구멍이 생겼다. 바로 함장실 부근이었다. 장병들은 함장실 문을 열고 함선 벽에 끼어버린 브라이스 벤슨 함장을 구출했다. 바닷물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자 구축함의 침몰을 막기 위해 침수된 격실 구역을 폐쇄했다. 승조원 7명이 폐쇄된 공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침수구역을 밀폐하지 않았다면 이지스함의 자력 귀환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승조원들은 매뉴얼대로 행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지프 오코인 미 해군 제7함대 사령관은 사건 당일 기자회견을 열고 "1개의 기계실과 116명을 수용하는 선실 2개 구역을 포함한 3곳이 크게 손상됐다"고 말했다. 미 해군연구소(USNI) 뉴스는 충돌과 바닷물 유입의 영향으로 선체 일부가 찌그러졌을 뿐 아니라 배 자체도 뒤틀렸다고 보도했다. 레이더실 역시 통신 수단이 고장 나거나 전력 공급이 안 돼 먹통이 됐다. USNI뉴스에 따르면 피츠제럴드함이 외부에 조난 요청을 하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크리스털호의 항적을 조사한 스테판 워킨스 해군 정보기술안보 고문은 "크리스털호는 충돌 직후 엔진을 끄고 사고 현장을 살피는 대신 당초 가려던 항로로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가 선원들이 뒤늦게 사고를 알아채고 30분 만에 유턴했다"며 "자동 항해 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털호는 사고 발생 55분 만에 현장에 돌아와 일본 해안경비대에 연락했다. 당초 사고가 새벽 2시30분에 발생했다고 알려진 배경이다. NYT는 피츠제럴드함이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야간이라도 항해사와 승조원은 함교와 우현.함미 등에서 수평선을 살피며, 레이더 장교는 접근해오는 화물선을 스크린에서 발견했어야 했다. 또 브라이스 벤슨 함장은 즉시 함교로 소환돼 안전한 통로를 확보해 충돌을 예방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위성통신 있었는데 구조 요청 1시간 지연"=사고 이후의 대처도 의문이다. USNI 뉴스는 "이리듐 위성통신으로 구조 요청을 할 수 있었는데도 1시간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피츠제럴드함 승조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엄격한 함구령이 내려진 가운데 NYT와 접촉한 한 병사는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 한눈을 팔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망자 7명의 유가족들은 이들의 죽음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한 유가족은 "그들(해군)의 말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NYT에 말했다. 이경희 기자